대다수가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을 통해 PC통신을 접속하던 시절, 그 시절에도 모뎀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선구자들도 있었지만, 기껏해야 56K(56,000bps) 속도의 한계로 인해 지금과 같은 이미지 위주의 웹이나 동영상 등을 재생하는 멀티미디어 환경은커녕 텍스트 위주의 PC통신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케이블모뎀과 xDSL 등을 거치면서 가정용 통신회선의 속도는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으며, 이제는 100Mbps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속도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환경이 오래 되자 이제 이 속도도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는 기가 인터넷의 시대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모뎀의 시대부터 초고속 인터넷까지
옛날은 그랬다. 1200bps로 어렵사리 하이텔과 천리안에 접속하던 네티즌(사실 그 당시에는 네티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대이다)들은 9600bps 속도의 하이텔 단말기나 14.4K 속도의 모뎀이 나올때 환호했고, 56K 모뎀이 나오자 마치 신세계가 열린 것처럼 느꼈었다. 전화선을 이용해 ATDT 명령어로 PC통신에 접속될 때에 울려퍼지던 그 ‘뚜우뚜우~치익~~칙~~’하던 소리는 전화선 모뎀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128Kbps로 빨라진 ISDN을 지나 케이블모뎀과 xDSL 등의 초고속 네트워크가 가정에서도 대중화되면서 느린 속도로 인해 멀티미디어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던 PC통신은 사라져갔으며,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의 시대에도 초창기에는 ADSL의 경우 8Mbps, 케이블모뎀의 경우 10Mbps의 다운로드 속도가 고작이었으며, 이러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던 시절에는 랜카드 역시 10Mbps를 지원하는 제품이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는 두루넷과 하나로통신, 한국통신 메가패스 등이 초창기 초고속인터넷을 서비스하기 시작한 때이며 이후 최대 속도 52Mbps로 월등히 빨라진 VDSL로 넘어가고 이는 다시 광가입자망통신(FTTH) 등으로 발전하며 100Mbps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제 집과 사무실에서 100Mbps의 속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고,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익숙함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이에 따른 속도경쟁으로 인해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보다 더 빠른 무선인터넷을 우리 손 위에 들고 다니게 해주었으며, 덩달아 가정용 인터넷의 속도도 더욱 빠른 것을 원하게 하였다. 기가 인터넷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경쟁 시작한 기가 인터넷
한동안 100Mbps의 속도에 멈춰있던 인터넷이 다시 속도경쟁을 시작하게 만든 기가 인터넷, 과연 기가 인터넷이란 무엇일까? 기존의 100Mbps의 100Mb는 100메가비트, 즉 100,000,000비트이고 bps는 bit per second, 즉 초당 비트 처리속도를 말한다. 100Mbps는 초당 1억비트를 처리함을 나타내며, 메가바이트(MB)로 따지면 초당 약 12MB의 속도로 볼 수 있다. 기가 인터넷의 기가는 10억을 뜻하는 것으로, 1Gbps는 초당 10억비트이기 때문에 기존 100Mbps의 10배 수준의 속도인 셈이다. 즉 요즘 TV나 온라인상에서 기가 인터넷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은 현재 가정용 유선 인터넷 속도보다 최대 10배 가량 빠른 속도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초당 약 120MB 가량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속도로, 2GB의 영화 한 편을 내려 받는다고 가정하면 20초도 채 안 걸리는 엄청난 속도다.

국내 최소 기가 인터넷 상용화는 KT가 시작했으며, 올레 기가 인터넷(olleh GiGA internet)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월드IT쇼에서 전국 상용화를 발표했다. 현재 올레 KT와 SK 브로드밴드는 별도의 기가인터넷 상품을 내놓고 판매 중이며, LG 유플러스의 경우 기가 인터넷을 별개의 상품으로 구성하지 않고 유플러스 인터넷 신규가입자나 기존 가입자 중 TV G 4K UHD나 맘카를 신규로 가입하는 사용자에 한해 요금 변동 없이 인터넷 서비스를 기가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체험 프로모션을 진행한 바 있다. LG 유플러스는 기가 인터넷 상품을 연내 출시하기 위해 11월 현재 파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올레KT 기가인터넷 요금

▲ 올레KT 기가인터넷 콤팩트 요금

가장 먼저 기가 인터넷의 전국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 올레 KT의 기가 인터넷 상품은 3년 약정 기준으로 원 35,000원(부가세 별도)이며 모뎀 이용료와 가입 설치비는 무료로 제공된다.단, 모뎀 이용료는 3년 약정일 경우에만 무료이며 1년이나 2년 약정은 이용료가 발생, 가입 설치비 역시 약정 사용자만 무료로 제공되고 무약정 가입자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올레 KT는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 상품 이외에도 최고 속도를 기가 인터넷의 절반 수준인 500Mbps로 낮추고 요금을 3년 약정 월 3만원으로 책정한 기가 인터넷 콤팩트 상품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 SK브로드밴드 기가인터넷 요금

▲ SK브로드밴드 기가인터넷 라이트 요금

KT의 뒤를 이어 기가 인터넷 상품을 내놓은 SK 브로드밴드는 ‘B Giga 인터넷’이라는 상품명으로 기가 인터넷을 선보이고 있다. SK 브로드밴드의 기가 인터넷 상품 역시 KT와 동일하게 3년 약정 기준 35,000원(부가세 별도)이며, 장비 임대료도 마찬가지로 3년 약정 시에만 면제, 가입 설치비도 약정 가입자만 면제되고 있다.

SK 브로드밴드도 기가 인터넷의 절반 속도인 최대 500Mbps 회선이 제공되는 B Giga 인터넷 라이트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으며, 가격 역시 KT의 기가 인터넷 콤팩트와 동일한 3년 약정 월 3만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올레 KT와 SK 브로드밴드 양사 모두 기가 인터넷과 IPTV 상품을 동시에 가입한 고객에 한해 기가 인터넷 사용 시 Wi-Fi까지 최대 3~400Mbps로 사용할 수 있는 Giga Wi-Fi용 AP를 제공해주며, 2014년 12월 말까지 가입한 고객에게 제공된다. 11월 말 현재 KT는 기가 인터넷 Wi-Fi 서비스의 별도 상품은 준비되어있지 않으며, SK는 B Giga Wi-Fi라는 명칭의 별도 상품으로도 선보이고 있다. 요금은 월 1,500원(부가세 별도)이며, 물론 기가 인터넷 이용자에 한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활용을 위해서는 장비 업그레이드도 필수
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면 우리집의 모든 인터넷을 기가급으로 쓸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선 집 안으로 들어온 인터넷 회선이 나의 PC에 연결되기 직전까지는 기가급 회선으로 설치가 되지만 그 이후는 사용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회선은 기가급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인터넷 연결 기기가 모두 기가급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예를 들자면 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해서 설치가 완료되었는데, 연결된 내 PC의 이더넷 카드가 100Mbps까지만 지원한다면 100Mbps 광랜을 쓸 때와 똑같은 속도만 쓸 수 있다. 그나마 최신의 PC들은 기가비트 이더넷 포트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구형 PC나 저가형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는 1Gbps를 지원하는 이더넷 어댑터를 별도로 구매해서 PC에 설치하고 인터넷을 연결해야 한다.

▲ 인텔 PRO/1000 GT 데스크탑 어댑터

▲ 에이수스 RT-AC68U 인터넷 공유기

만일 기가 인터넷을 쓰려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여러 대의 PC를 연결하기 위해 인터넷 공유기를 쓰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공유기도 기가비트를 지원하는 모델로 사용해야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있으며, Wi-Fi를 빨라진 속도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가비트 랜카드와 기가비트 공유기만 쓰면 다 된 것 같지만 사실 랜 케이블도 눈 여겨 봐야 한다. 그간 우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던 랜 케이블은 CAT5(카테고리5) 규격으로, 4페어 8가닥 중에서 실제로는 총 4가닥만 사용해서 100Mbps의 속도까지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랜선 한 가닥에서 두 개의 커넥터를 빼거나 하나의 RJ45 커넥터와 또 하나의 전화선 연결단자를 만든 것을 사무실 등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100Mbps 랜이 실제로 네 가닥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가비트의 속도를 쓰기 위해서는 CAT5e나 CAT6 랜 케이블을 사용해야 한다. CAT5 랜 케이블은 선재에 커넥터만 끼워서 툴로 찍으면 완성되지만 CAT6 랜 케이블의 경우 선재 자체도 다를뿐더러 커넥터도 더욱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제작도 복잡해진다. 만일 인터넷 회선과 기타 장비를 모두 기가 인터넷용으로 바꿨는데도 연결속도가 100Mbps라고 표시된다면 케이블을 한 번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기가 인터넷, 절반은 기가 아닌 기가?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기가 인터넷은 빠른 인터넷 속도를 원하는 사용자들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몇몇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현재 상품을 출시한 올레 KT와 SK 브로드밴드를 보면 최대 1Gbps의 기가 인터넷 상품뿐만 아니라 기가 인터넷의 절반에 해당하는 속도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가 인터넷 콤팩트’나 ‘기가 인터넷 라이트’라는 명칭으로 내놓고 있는데, 최대 속도가 1Gbps에 턱없이 부족한, 그러니까 속도가 초당 기가비트 단위가 아닌 수백 메가비트 단위임에도 불과하고 상품명에 ‘기가 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 올레 KT의 기가인터넷 속도제한 내용

▲ SK 브로드밴드의 기가인터넷 속도제한 내용

두 번째 문제는 속도의 제한이라는 중요한 문제다. 올레 KT와 SK 브로드밴드의 기가 인터넷 서비스 내용을 자세히 보면 데이터의 사용 자체는 무제한이지만 1일 100GB를 초과한 날은 당일 나머지 시간 동안은 최대 속도 100Mbps의 일반 인터넷 상품과 동일한 속도로 제한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100GB는 결코 적은 용량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의 용량을 2GB로 본다면 50편의 영화를 내려 받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것도 한 달이 아닌 하루 동안만 적용되는 기준이다. 1일 데이터 100GB를 넘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개인 사용자라면 흔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사용 환경에 따라서 1Gbps의 속도가 꽉 차게 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가입자가 이용한 데이터의 전송 속도가 몇 bps였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100GB의 용량 기준에 대한 제한만을 걸어두었다는 것도 문제다.

제한 걸린 기가 인터넷, 종량제의 서막인가
만일 사용자가 아주 좋은 환경에 아주 좋은 서버에 연결되어서 항시 1Gbps의 최고 속도를 만끽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100GB의 제한은 과연 얼마 동안 쓸 수 있는 것일까? 1Gbps에서 대략 초당 120MB를 내려 받을 수 있다고 보면 13.8분, 즉 14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면 100GB 용량을 내려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왜 점점 더 빠른 속도를 원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환경이 점점 빠른 속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압축을 많이 해서 용량을 줄인 MP3 파일을 듣는 것이 익숙했지만 점차 비트레이트가 높은 고음질의 MP3 파일을 원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무손실 고음질의 음악파일도 대중화된 상태다. 320Kbps MP3 음원은 대략 한 곡당 10MB를 넘지 않지만 무손실 FLAC 파일은 한 곡당 수십 MB에서 수백 MB에 달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애용하는 데이터의 용량이 커졌고, 그에 따라 저음질 파일을 받을 때와 큰 차이 없이 빠르게 내려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하게 된 것이다.

▲ 4K UHD의 시대는 이미 현재진행형

이제 앞서 이야기한 영상 파일로 생각해보자. 영화 파일 한 편당 약 2GB라고 이야기 했었지만 예전 VCD가 기준이던 시대에는 영화 한 편당 대략 600MB 내외였다. 지금은 DVD를 거쳐 블루레이의 시대가 되면서 훨씬 더 고해상도의 영상이 기본이 되었고, 그 만큼 용량도 크게 증가했다. 이제 얼마 뒤에는 4K UHD 영상이 기본처럼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용량의 파일이 유통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100GB는 금방 소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시대가 되어서 100GB 전송 후 하루의 나머지 시간 동안 예전의 100Mbps 속도로 만족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 것은 지금 100Mbps에 적응된 사용자들에게 오전에만 100Mbps 광랜 속도로 사용하고 오후에는 내내 최대 8Mbps의 ADSL 속도로 쓰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00Mbps의 속도에 적응된 당장이야 하루 100GB라는 기준이 마치 헤비 업로더, 헤비 다운로더에 국한된 이야기 같고 그다지 실감되지 않을 수 있지만 1Gbps의 속도에 익숙해지는 순간 1일 100GB의 제한이 우리에게 별 상관이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직까지 기가 인터넷의 용량 제한 문제가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일단 기가 인터넷이 말은 전국 서비스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가 인터넷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지역이 아직까지는 한정적인데다가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용자수가 그만큼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용량 제한에 대한 약관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스마트폰의 용량 제한에 어느새 익숙해져서 종량제에 대한 거부감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가 인터넷은 사물 인터넷과 같이 우리 생활의 모든 기기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미래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꼭 필요한 발전임은 분명하지만 종량제가 이러한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앱스토리 매거진(www.appstory.co.kr) | 원수연 기자

원수연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