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에서 갤럭시까지......24년의 발자취 - ①

기사 입력시간 : 2012.09.18 17:33:43 | 김준혁 기자

애니콜에서 갤럭시까지......24년의 발자취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휴대전화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 후 14년 동안 시장을 지배해 온 노키아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가트너, IDC 등 해외 시장조사기관들은 2012년 1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 판매량에서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왕좌에서 끌어 내렸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바 있지만,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모바일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1988년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SH-100’을 공개한 지 24년 만에 이뤄낸 업적이다.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 그러나 그들이 항상 양지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폰 SH-100의 탄생

1973년 4월 3일. 뉴욕 맨해튼의 빌딩숲 사이에서 한 남자가 900g의 묵직한 플라스틱 덩어리를 얼굴에 대고 말을 걸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마틴 쿠퍼. 당시 45세로 모토로라 연구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덩어리는 최초의 휴대전화인 ‘다이나택(DynaTac8000)’이었다.

▲ 역사상 최초로 휴대전화를 사용해 통화한 사람으로 기록된 마틴 쿠퍼

1971년 AT&T와 모토로라는 미연방통신위원회에 처음으로 휴대전화 개발에 대한 제안을 하고,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한다. 초기에는 통신산업 경험을 갖고 있던 AT&T의 벨연구소가 한 발 앞서 나가며, ‘셀룰러 테크놀러지’를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AT&T가 생각하는 휴대전화는 자동차에 장착하는 카폰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모토로라는 처음부터 개인용 휴대전화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했다.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출발한 인류 최초의 휴대전화 전파는 뉴저지 벨연구소의 휴대전화 연구원에게 연결됐고, 마틴 쿠퍼는 전화를 받은 라이벌에게 “지금 진짜 셀룰러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며 성공을 자축했다. 그러나 이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88년은 우리에게 서울올림픽으로 기억되는 해이지만, 국내 통신 시장에서는 처음으로 무선통신 011 서비스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1988년 7월 1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휴대전화는 모토로라의 다이나택8000SL이었다. 국산 휴대전화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두달 반 뒤인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였다. 삼성전자에서 개발한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SH-100’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47명의 귀빈들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이다. 국내 이동통신 첫 개통의 기록은 비록 모토로라에게 빼앗겼지만, 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은 지켜내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 서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완성된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SH-100.
그러나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며 시장에서는 냉대 받고 만다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역사는 1984년 40명의 연구원으로 출발한 무선개발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 도시바의 카폰을 분해한 뒤, 부품을 사다가 조립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1986년 국내 최초의 카폰인 ‘SC-1000’을 출시했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SC-1000이 실패하자 삼성전자는 연구원의 3/4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키며, 무선개발실을 축소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선개발실은 당시 240만 원에 이르던 고가의 다이나택8000을 연구목적으로 구입해 달라고 경영진에 사정했다. 그렇게 얻어낸 10대의 다이나택8000이 그들의 손에서 철저하게 분석됐다. 이러한 노력 끝에 빛을 본 SH-100은 길이 40mm(안테나포함), 너비 66mm, 두께 46mm에, 무게 700g 이상이 나가는 거구였다. 지금 생각해도 휴대성과는 한참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 당시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던 듯 싶다. 처음 공개되고 약 8개월 뒤인, 1989년 5월에 정식으로 출시된 SH-100은 ‘냉장고폰’이라는 별명만 남긴 채 시장에서는 실패하고 만다.

▲ 당시 소형 차 한 대 값인 240만원에 육박했다는 모토로라의 다이나택8000의 자태

계속된 실패, 그리고 ‘애니콜’의 등장

서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개발한 SH-100은 통화 품질 문제를 노출하면서,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등 외국 제조사들과의 제품경쟁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삼성전자는 SH-100의 후속모델 ‘SH-200’을 1992년에 개발했지만, 모토로라가 1989년 출시한 세계 최초의 플립형 휴대전화, 마이크로택 보다 성능이 떨어지자 아예 시판조차 하지 않았다.

▲ 삼성전자의 SH-200을 출시조차 못하게 만든 모토로라 마이크로택. 세계 최초의 플립형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는 모토로라의 마이크로택 시리즈에 와서야 비로소 ‘휴대’라는 말에 걸 맞는 크기가 됐다. 첫 번째 마이크로택인 ‘9800X’는 플립을 연 상태에서도 최대 길이가 228mm 정도였고, 무게는 350g이었다. 1992년 국내에서 마이크로택 라이트를 판매하기 시작한 모토로라는 한국 시장에서 63%의 시장 점유율을 가져갔다. 반면 삼성전자는 1993년에서야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0%대에 겨우 진입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SH-200에 이어 개발한 ‘SH-300’, ‘SH-400’, ‘SH-600’으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1993년 11월,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100g대의 초경량 휴대전화 개발에 성공했다. ‘SH-700’은 199g의 무게에 145mm라는 아담한 크기와 함께 더블 안테나 채용으로 통화 품질 개선을 이루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SH-700으로도 시장에서의 실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브랜드의 인지도 문제였다. 당시 모토로라 휴대전화는 지금의 애플 아이폰에 비견될 정도로 세계 최고의 브랜드였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국내 가전제품 회사의 못미더운 휴대전화보다 세계 1등 브랜드인 모토로라를 선택했다. 그러던 1994년, 삼성전자는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그 해 6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꼽은 휴대전화의 불만 요소 1위는 통화 불량이었다. 당시 조사에서 ‘통화 성공률이 낮다’가 39%로 1위를 차지했고, ‘잡음이 심하다’가 15%로 2위, ‘수신이 잘 안된다’가 13%, ‘잘 끊긴다’가 11%로 나타나 통화 품질에 관한 불만이 78%에 달했고, ‘배터리 수명이 짧다’는 의견도 12%를 차지했다.

▲ 삼성전자 최초의 애니콜. SH-700을 개량한 제품으로
SH-770이라는 모델명을 갖고 있었고, 디자인도 거의 흡사하다

삼성전자는 여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1994년 11월에 출시된 ‘SH-770’에 애니콜(Anycall)이라는 브랜드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언제(anytime), 어디서나(anywhere)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애니콜은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마케팅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한국형 휴대전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삼성전자는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26%를 확보하며, 54%의 모토로라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세계시장으로의 도약

6년에 걸친 실패 끝에 애니콜로 첫 도약의 기회를 잡은 삼성전자는 1995년 첫 번째 애니콜, SH-770을 약 40만 대 판매하는 성과를 달성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38%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마침내 47%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시장 1위의 휴대전화 제조사로 우뚝 서게 됐다. 모토로라의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21% 급감한 25%에 머물렀으며, 이후 국내 제조사들이 성정함에 따라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1996년 4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CDMA 통신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다. CDMA 기술의 상용화는 삼성전자에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의 CDMA 단말기 ‘SCH-100’을 출시하며, 내수 시장 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올렸다. 그에 반해 CDMA 기술 전환에 소극적이었던 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은 10% 대까지 주저앉았다. 삼성전자의 해외시장 진출이 본격화 된 것도 이때부터다. 삼성전자는 해외시장을 공략하면서 애니콜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장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었던 모토로라, 노키아 등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입장에서 저가형 제품의 물량공세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해외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전무했던 자사의 제품들을, 비슷한 경쟁사 제품들보다 10% 비싼 가격에 출시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6년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수출량은 16만 대에 불과했지만, 1997년에는 76만 대, 1998년에는 240만 대로 빠르게 증가했던 것이다. 처음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접한 해외 소비자들은 비싼 단말기 가격에 의구심을 표했지만, 직접 사용해 본 후에는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히 유럽시장을 겨냥한 최초의 GSM 방식 휴대전화 ‘SGH-600’의 성공은 삼성전자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SGH-600은 최종적으로 960만 대가 팔려나가 아쉽게 1000만 대에 약간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중 첫 1000만 대의 주인공은 2002년 4월 출시된 ‘SGH-T100’의 몫이었다. 세계 최초로 컬러 LCD를 탑재한 휴대전화, SGH-T100은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출시 후 약 1년여 만에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 SGH-T100은 국내에서 ‘이건희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제품 개발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SGH-T100의 성공은 삼성전자를 단번에 세계 3위의 휴대전화 제조사로 올려놓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 처음으로 컬러 LCD를 채용하면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중 첫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SGH-T100. 일명 이건희폰으로도 불렸다

미스터 애니콜, 이기태 전 부회장

삼성전자의 애니콜 성공신화에는 첫 40명의 연구원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기태 전 부회장은 1994년 무선사업부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산업과 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어려움에 처해 있던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을 일으켜 세운 애니콜 브랜드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1995년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애니콜 제품의 품질이 불량하다는 지적을 받자, 구미공장 전 직원을 모아놓고 문제가 된 휴대전화 15만 대를 불태운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불타 없어진 휴대전화의 가치는 약 5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최초’와 ‘최고’를 강조한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가장 먼저 만들고, 이미 있는 제품이라면 가장 좋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 같은 경영 전략이 세계 최초의 CDMA 휴대전화 단말기와 컬러 LCD 단말기, 500만 화소 카메라폰 등의 결과물로 나타난 셈이다. 특히 애니콜의 고급화 전략 역시 이기태 전 부회장의 주도하에 추진됐는데, “시골 할머니가 강아지를 팔 때도 싼 값에 팔지 않는데, 직원들의 땀과 정성이 깃든 휴대전화를 싼 값에 팔수는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심지어 한 외국 바이어와의 상담 중 단말기 내구성에 의구심을 보이자, 그 자리에서 단말기를 벽에 힘껏 던지고는 다시 주워 테스트해 보라며 바이어에게 건네준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탱크주의로 유명했던 애니콜 단말기는 고장 없이 잘 작동했고, 외국 바이어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전해진다.

▲ 애니콜 성공 신화의 주역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중요시한 인물로 삼성전자를 퇴직한 후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2년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이기태 전 부회장의 투박하지만 뚝심 있는 경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기태 전 부회장이 무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이듬해인 1995년, 애니콜은 1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5년, 삼성전자는 연간 1억 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하며 10년 사이 100배의 성장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이기태 전 부회장은 무선사업부 상무와 전무, 부사장을 거쳐, 2001년 3월부터는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역임하며,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의 성공신화를 진두지휘 해 왔다. 그러나 2006년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은 한계를 드러낸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노키아와 2위인 모토로라가 신흥시장에 보급형 모델을 공급하며 점유율을 높여간 반면, 3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감소했다. 그 동안 고수해온 고급, 고가 정책이 신흥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기태 전 부회장은 2007년 1월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실무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이기태 전 부회장은 인하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공대출신 경영자다. 그래서일까?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이기태 전 부회장은 이미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4세대(4G) 통신 기술 표준을 획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통신 표준은 미국과 유럽의 차지였지만, 4세대까지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2003년 ‘삼성 4G 포럼’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4G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기태 전 부회장은 4G 단말기가 2010년부터 상용화 될것으로 전망한 바 있는데, 실제 상용화는 2011년 하반기에나 가능했으니 시장의 성장 속도가 오히려 그의 예측을 따라오지 못한 모습이다. 현재 그는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와 미래융합기술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겸임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애니콜 텐밀리언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