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잃은 것은 IT 천재가 아닌 ‘혁명가’
스티브 잡스 (Steve Paul Jobs)

지난 10월 5일(한국시간 6일). 애플이 올해 준비한 가장 큰 이벤트였던 아이폰4S의 발표 다음날이었다. 아이폰4S에 대한 실소와 기대가 교차하던 바로 그때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애플의 창립자이자
교주와도 같은 인기를 얻었던, 애플 그 자체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날 한마음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를 기렸다. 추모의 마음을 담아, 여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간략하게 돌아보고자 한다.

비교적 평범했던 유년기

▲ 스티브 워즈니악과 운명의 만남을 갖다

스티브 잡스의 유년시절을 가리켜 흔히들 ‘불행했다’고 표현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와 헤어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생부인 압둘파타 존 잔달리는 시리아 정치학부 이민자로 후에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현재는 네바다 주에서 카지노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잡스는 친모와는 만난 적이 있지만 친부와는 끝내 만나지 않았으며,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만을 진짜 부모로 여겼다(스티브 잡스는 ‘양부모’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했다).
어린 시절에는 천재성을 보이지 않았으며 자기 세계에 틀어박혀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잡스가 IT 천재로서의 기질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고등학생이 되고부터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잡스는 졸업 후 HP(휴렛 팩커드)사에 인턴사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게 된다. 이후 인턴사원 계약이 만료된 잡스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학비 문제로 한학기만에 학교를 관두게 된다. 그러나 잡스는 학교를 관뒀음에도 18개월을 교내에 머물며 교양 강좌들을 몰래 청강했다. 당시 들었던 서예 강좌를 통해 UI용 글씨체를 디자인하는데 영감을 얻고 동양철학 강좌를 통해 불교에 입문하기도 하는 등 대학 생활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한 바 있다.

▲ 리드대학교 캠퍼스에서 잡스는 그 기획력의 원천을 얻게 된다

애플의 탄생, 그리고 몰락

대학을 관두고 소위 히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며, 승려인 코분치노 오토가와를 만나 선불교에 입문하는 등 기행을 일삼던 잡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한 게임회사 ‘아타리’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태동하는 게임들을 보고 컴퓨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잡스는 줄곧 HP에서 일하고 있던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 제작에 착수했고, 1976년 애플의 첫 제품인 애플I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 1,666달러라는 가격에 판매된 애플I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잡스와 워즈니악은 여기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당시 워즈니악이 애플I의 초안이 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HP에 다섯 번이나 먼저 제안하였다는 것. HP가 워즈니악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조악한 애플I이었지만 이들이 세상에 내놓은 제품은 업계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가능성에 모든 걸 걸었던 두 남자는 곧 그 결실을 거두었다. 조악한 만듦새의 애플I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애플스러운’ 제품이었던 애플II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II+, IIe, IIc, IIGS 등 업그레이드 제품들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연이은 성공으로 애플,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 애플 리사, 최악의 성적을 거두다

하지만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리사(잡스의 딸의 이름을 딴)프로젝트가 비싼 가격 때문에 실패하고, 애플III도 형편없는 제품 완성도로 연달아 실패하게 된다. 애플I, 애플II는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을 담당하고 워즈니악이 혼자 만들다시피 한 제품이었으나, 애플III는 워즈니악이 손을 떼고 스티브 잡스가 제품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품이었다. 누구나 성공을 예상했던 1980년 발매된 이 제품은 4,340달러의 비싼 가격과 조악한 제품 설계로 악평 속에 실패를 거두었다. 리사 역시 고해상도 GUI, 멀티태스킹, 확장슬롯, 스크린세이버 기능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지만 프로세서가 사양에 비해 느려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형편없었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9,995달러에 달해 누가 봐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었다.
이후 출시된 매킨토시 128K가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 전 두 제품의 연이은 실패는 애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직접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게 된다(워즈니악은 이보다 앞선 1987년 애플을 퇴사했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다시 성공

애플을 나와 새로운 시작의 때를 맞은 잡스. 잡스는 애플 퇴사 시 함께 회사를 나온 엔지니어들과 NeXT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NeXTStep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잡스는 NeXT 설립 기자회견장에서 실제로 애플을 ‘엿 먹이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할 정도로 애플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궁극적으로는 NeXTStep으로 매킨토시를 누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NeXT 역시 애플 리사와 마찬가지로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만다. NeXT는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GUI 기반의 사용자 중심, 개발자 친화적 환경은 큰 호평을 받았지만, 역시나 리사처럼 높은가격으로 인해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결국 NeXT는 1993년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대신 NeXT는 하드웨어가 아닌 운영체제 판매에만 주력했으며, NeXT의 운영체제는 MAC OS X로 명맥이 이어져 지금은 ‘전 세계 2위의 운영체제’로서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운영체제 사업이 어쨌든 NeXTStep 컴퓨터 사업은 분명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 토이스토리의 성공은 잡스에게 다시 한번 성공을 가져다 준다.

컴퓨터 사업에서 실패한 잡스가 다시금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픽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이혼으로 인해 위자료를 지불할 자금이 필요했던 조지 루카스는 CG 담당부서였던 픽사를 헐값인 천만 달러에 잡스에게 넘겨준 것이다. 픽사는 틴토이라는 토이스토리의 원조격 되는 단편 애니를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틴토이를 기반으로 1995년 개봉한 토이스토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둬 잡스를 다시금 성공한 기업인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 NeXTStep, 이용자 지향의 GUI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역시나 가격이 문제였다

화려한 복귀

한편, 잡스가 없는 애플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킨토시 출시 이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법정 분쟁에서 패소한 후 만년 2인자로 내려앉은 애플은 차세대 운영체제의 개발에도 실패하고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애플은 최후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1997년 애플은 자신들이 내쫓은 스티브 잡스의 NeXT를 인수하고, 매킨토시의 차세대 운영체제로 NeXTStep을 채택, 스티브 잡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 NeXT를 통해 애플로 다시 돌아온 잡스

잡스가 애플사로 돌아온 1997년 애플의 적자는 무려 1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다음 해인 1998년에는 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애플로 돌아와 다시금 성공을 거둔 잡스. 하지만 여기에 혁명가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아이팟’을 통해서였다. 2001년, 애플은 아이팟을 시장에 선보였고, 사이버 음원을 유통하는 아이튠즈를 내놓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연이은 성공의 덕으로, 애플의 설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애플 CEO의 직함을 가진 적이 없던 스티브 잡스는 2004년 애플의 CEO로 정식취임했다. 하지만 CEO로 취임한 바로 그 해 8월, 잡스는 췌장암을 선고받게 된다.

▲ 아이팟의 출시와 성공은애플과 잡스에게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준다.

인간성 논란

스티브 잡스의 업적은 차치하고, 그의 인간성은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진정한 ‘애플의 아버지’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이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아타리의 의뢰를 받아 제품을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사실 그 규모가 5,000달러이었음에도, 실 제작자였던 워즈니악에게는 700달러계약이라고 말하고 350달러밖에 나눠주지 않은 것이다. 이후에도 워즈니악은 실제 애플의 주요 초기 제품을 혼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모두 잡스에게 빼앗기다시피 했다. 이후 잡스와 워즈니악은 표면적으로 화해를 했지만, 워즈니악은 아직 앙금이 남아있음을 줄곧 피력해 왔다.
스티브 잡스가 괴악하게 굴었던 것은 워즈니악 뿐이 아니었다. 잡스는 자타공인 ‘같이 일하기 괴로운 인물’이었다.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개발이 진행된 제품의 계획을 전면 백지화시킨 사례가 부지기수였으며, 픽사 인수 시절에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픽사 창립자 한 명을 아예 기록에서 말소시켜 버린 적도 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 저술한 책에서 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당 출판사의 책을 자사 스토어에서 다 치워버린 적도 있다. 현재 통신 업계에 만연한 특허권/지적재산권 분쟁도 스티브 잡스가 주도했다 봐도 될 정도.
앞서 이야기한 애플 제품의 이름이기도 했던 잡스의 딸이자 이전 동거녀의 딸이었던 ‘리사’도 잡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난 무정자증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며 자신의 딸을 부정했을 정도다.
여러모로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가 오히려 인간적으로 더 인정받을 만하다.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 스티브 워즈니악과 같은 위치에 있던 ‘폴 앨런’과 함께 했던 빌 게이츠가 도덕적으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 잡스와 워즈니악의 관계는 잡스의 인간성을 거론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 스티브와는 서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료이자 경쟁자, 친구로서 지내왔다 by 빌 게이츠

무선혁명, 그리고 영면

▲ 앱스토어는 고착화된 IT 시장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보였고, 개발자들은 다시 꿈꿀 수 있게 됐다

아이팟의 천문학적인 성공 이후 애플은 또 다른 제품군을 준비했다. 바로 전화기능을 탑재한 아이팟, ‘아이폰’이었다. 2007년 1월 9일 맥월드 2007을 통해 최초로 발표된 아이폰은 출시 당시에는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애플 그리고 잡스는 성공 못지않게 많은 실패를 경험했으며, 아이폰 역시 그런 기행의 한 가지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초기의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역대 애플의 제품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아이폰은 실로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제품이다. 그전까지 이동통신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휴대폰 디바이스는 아이폰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기존의 휴대폰이나 현재 발매되는 폰들이 대부분 통신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통신사 요청에 따라 기능과 앱에 수정이 가해지는 반면 아이폰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스펙으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다. 그 덕에 디바이스의 스펙 다운은 예사였고 질 높은 콘텐츠 역시 제대로 즐기는 게 힘들었던 국내에서도, 아이폰의 출시이후 스마트폰 무한 경쟁의 시대를 맞을 수 있었다. 뒤이어 선을 보인 앱스토어는 또 어떤가. 개인이 콘텐츠를 자유로이 생산하고 손쉽게 공급할 수 있었던 앱스토어는 ‘제한적인 기능을 가진 PDA’에 불과했던 아이폰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판도라의 상자’로 만들었으며, 개발자들에게는 새로운 성공을 꿈꿀 수 있는 접근성 높은 또 하나의 플랫폼을 제시했다. 아이폰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내수용 휴대전화들은 통신사의 입김으로 스펙이 다운된 절름발이 제품들만 출시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 앱스토어가 없었다면 지금만큼 앱 시장이 활기를 띠는 일도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무선혁명의 중심에는 애플이 있었고, 애플은 곧 스티브 잡스요, 스티브 잡스는 애플 그 자체였다.

▲ 아이폰이 보여준 새로운 한가지는 (One more thing) 혁신이고 혁명이었다.

하지만 결국 잡스도 병마에게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잡스는 수척해져 갔고, 그의 건강 상태도 급속히 나빠져만 갔다. 병가 소식이 들려오고 잡스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왔으며, 그럴 때마다 애플의 주가는 등락을 반복했다. 지난 2월에는 의사로부터 6주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루머까지 올라왔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실리콘 벨리 오찬에 참석하고, 3월 3일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고로 3월 당시 잡스가 발표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잡스 시한부 루머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던 애플의 주가는 폭등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2011년 들어 잡스의 모습은 눈에 띠게 수척했다. 결국 8월 25일 잡스는 CEO직에서 사임했고 지난 10월 5일에는 영면에 들었다. IT 업계의 개척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인, 수많은 이들의 롤 모델이자 스마트폰 시대의 혁명가였던 잡스는 그렇게,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전 세계는 슬퍼했다. 애플 그 자체였던 스티브 잡스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 이었으며, 성인군자는 아니었지만 집착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뭔가를 바꿔나가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실현된 제품들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의 부고 소식조차 그가 만든 제품으로 접했고, 많은 이들은 추모사 역시 그의 제품으로 내놓았다.
잡스로 인해 다시금 세상을 바꿀 파도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파도는 앞으로도 계속 재생산되며, 끊임없이 커져 나갈 것이다. 잡스로 인해 바뀌어온 풍경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를 잡스와 함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잡스에 대한 추모를 아래 추모사로 대신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스마트폰이야말로 융합 기술의 아이콘이다.
우리가 지금도 토머스 에디슨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100년 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름은 모를지라도
스티브 잡스의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

월간 앱스토리┃신효송 기자

김준혁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