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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게임 환경 속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말하다, 서태건 게임물관리위원장

기사 입력시간 : | 원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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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게임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문화 콘텐츠 수출의 일등 공신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규제와 진흥 사이의 줄타기가 존재했다. 특히 게임물의 등급을 분류하고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최근 몇 년간 불공정 심의 논란, 전산망 비리 의혹 등 잇따른 악재로 몸살을 앓았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급변하는 게임 시장 환경에 맞춰 규제 기관을 혁신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 제5대 게임물관리위원장으로 서태건 전 WCG 대표가 호명되었다. 그는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아닌, 삼성전자를 거쳐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산정보산업진흥원 등을 두루 거친 자타공인 게임 산업 전문가다. 위기의 게임위를 구원투수로 등판한 서태건 위원장,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게임위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삼성전자 미디어 콘텐츠 그룹에서

시작된 인연

서태건 위원장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면서도 정석적이다. 그는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미디어 콘텐츠 그룹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사업으로의 확장을 꾀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곳에서 멀티미디어 타이틀 제작과 유통 실무를 경험하며 콘텐츠 산업의 생리를 바닥에서부터 익혔다. 1990년대 후반은 한국 게임 산업의 태동기나 다름없었다. PC 통신을 넘어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며 온라인 게임이 싹트던 그 시절, 대기업의 시스템 안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경험한 것은 훗날 그가 산업 전반을 조망하는 행정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후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전신인 한국게임산업진흥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인 산업 지원 및 정책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간 기업에서의 실무 감각과 공공 기관의 정책 수행 능력을 동시에 갖춘 그는 게임 산업 본부장과 글로벌 비즈니스 본부장을 역임하며 한국 게임의 해외 수출과 산업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이 시기는 한국 온라인 게임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던 황금기였다. 서태건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 사격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부산을 게임의 도시로 만든

'지스타'의 아버지

서태건이라는 이름이 게임 업계에 뚜렷하게 각인된 계기는 그가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2008년 그는 부산정보산업진흥원장으로 부임하며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게임 산업의 인프라를 부산으로 확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게임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G-STAR)의 부산 개최를 이끌어냈다.

단순히 장소만 옮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스타를 단순한 신작 발표회를 넘어,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B2B의 장이자 게이머들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지스타는 관람객 수와 참가 기업 수에서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게임 쇼로 도약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가 지스타의 부산 정착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고, 부산시 전체가 게임이라는 키워드로 활기를 띠게 만든 것은 그의 현장 중심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는 대형 게임사 위주의 시장 구조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인디 게임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의 창설과 성장은 그의 혜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디 개발자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BIC 페스티벌은 현재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디 게임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는 그가 단순히 산업의 규모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고민하는 리더임을 증명한다.


민간과 공공을 잇는 가교,

그리고 WCG

2018년 부산정보산업진흥원장 퇴임 후, 그는 학계와 민간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19년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 원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같은 해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공동대표로 취임하며 현장에 복귀했다. WCG는 'e스포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글로벌 행사로, 그는 이곳에서 2021년까지 재직하며 e스포츠 산업의 글로벌 표준과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했다.

이처럼 서태건 위원장은 기업체인 삼성전자와 공공기관인 한국게임산업진흥원, 지자체 산하의 부산정보산업진흥원, 민간 e스포츠 기업인 WCG로 이어지는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이는 게임 개발, 유통, 정책 지원, e스포츠, 교육 등 게임 산업의 거의 모든 가치 사슬을 경험했음을 의미한다. 업계가 그를 환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기업의 생리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현장 통'이라는 기대감이 그에게 쏠려 있는 것이다.

위기의 게임물관리위원회,

구원투수로 등판하다

2024년 8월, 서태건 전 WCG 대표​는 제5대 게임물관리위원장으로 호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전임 위원장 시절 불거진 등급 분류 시스템 구축 관련 비리 의혹, 불투명한 심의 기준에 대한 게이머들의 불신, 그리고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와 같은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었다. 특히 게임위는 폐지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된 상태였다.

서태건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소통과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와 게임 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밀실 심의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다. 그는 등급 분류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고, 심의 위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시대착오적인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민간 자율 심의를 확대하여 기업들의 창작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도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의 등급 분류 업무를 민간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미국의 ESRB나 유럽의 PEGI처럼 민간 기구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분류하고, 공공 기관은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에 집중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정적이거나 사행성 짙은 게임이 무분별하게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서태건 위원장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후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변화하는 게임 환경,

새로운 리더십의 시험대

현재 게임 산업은 PC와 모바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등 신기술이 접목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기존의 잣대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게임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태건 위원장은 이러한 기술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게임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행성 문제나 청소년 유해 요소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해야 하는 어려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제도의 안착은 그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과 함께,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서태건 위원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와의 긴밀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서태건 위원장은 평소 의전보다는 실무를,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현장 행보를 이어가며 게임 이용자들과의 만남을 늘리고 있다. 불통의 상징이었던 게임위를 소통의 아이콘으로 바꾸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부산을 게임 도시로 탈바꿈시켰던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과연 침몰 직전의 게임위를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닌, 게임 산업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가꿀 줄 아는 정원사다. 잡초는 뽑아내되 꽃은 꺾지 않는 지혜로운 규제, 그리고 산업과 이용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환경 조성. 이것이 서태건 위원장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그의 행보가 한국 게임 산업의 르네상스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 우리는 그의 손끝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원수연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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