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선택하는 기준은 소비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디스플레이 크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저장공간 용량 또는 배터리 사용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물론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들도 많다. 하지만 선택의 기준에서 성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화면이 크고 저장공간이 넉넉하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더라도 성능이 부족하면 사용하는 내내 불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AP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없다. 오늘은 스마트폰의 심장, AP는 무엇이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CPU가 뭐지?

우리가 흔히 컴퓨터 사양을 이야기할 때 많고 많은 부품 가운데 CPU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네 컴퓨터 뭐야?”라고 물으면 코어 i7이라거나 라이젠7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는 다른 부품보다 CPU가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구매할 때 선택 기준으로도 CPU가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 CPU는 Central Processing Unit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중앙처리장치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는 크게 보면 계산기의 일종으로, 모든 동작을 산술과 논리 연산을 기반으로 진행한다. CPU와 더불어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주요 부품으로는 영상 정보를 위한 연산을 전담하고 화면을 출력하는 GPU가 있고, 데이터의 일시적인 저장으로 시스템의 전반적인 속도 향상에 도움을 주는 RAM(램)이 있다.

이렇게 내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주로 CPU와 함께 GPU(또는 GPU를 담고 있는 그래픽카드)의 종류와 램의 용량을 언급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이번에 산 컴퓨터는 인텔 코어 i7(CPU)에 엔비디아 GTX1060(GPU)에 램 16GB’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데스크톱 PC에서도 그렇고, 포터블 PC인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늘날 PC에 버금가는 성능으로 발전했다고 일컬어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어떤 제품을 구매했다고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모델명을 이야기하지, 어떤 CPU를 사용한 스마트폰을 샀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의 CPU

그렇다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는 CPU가 들어있지 않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에도 CPU가 있다. 스마트폰에도 당연하게 연산을 담당하는 중앙처리장치가 있으며, 영상 관련 연산을 전담하고 화면을 출력하는 GPU가 있고, 또 램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요 사양보다는 제품의 모델명이 명확하게 지정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이야기할 때 갤럭시S7이나 G6, 아이폰7 등 모델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마니아들은 스마트폰에서도 핵심 사양을 따져보는데,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연산 유닛을 기준으로 따지게 된다. 이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는 CPU라는 표현도 사용하지만, AP라는 표현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갤럭시S7을 샀다고 하지, 엑시노스8890 스마트폰을 샀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AP는 뭘까?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AP는 뉴스에서 많이 보는 세계적인 통신사인 Associated Press의 AP도 아니고, 무선랜 접속을 위한 장치인 Access Point도 아니다. 스마트폰의 사양에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AP는 'Application Processor'의 약자이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CPU를 AP라고 다르게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의 CPU와는 달리 스마트폰에서는 주 연산을 위한 CPU와 영상 연산을 위한 GPU, 그리고 통신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이 하나의 칩으로 통합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AP는 컴퓨터의 CPU, GPU, 통신칩, 경우에 따라서는 램까지 모두 통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의 CPU보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성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진짜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다.

AP의 구성

AP, 어떤 것들이 있을까?

컴퓨터 CPU가 한 회사에서만 나오지 않듯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역시 한 회사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출시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AP로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와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시리즈, 애플의 A 시리즈, 미디어텍의 MT 시리즈/헬리오 시리즈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애플의 A 시리즈는 애플의 독자 AP로, 오직 애플 자사의 모바일 기기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엑시노스 역시 삼성전자의 독자 AP로, 주로 자사의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중국의 메이주도 일부 모델에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AP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폰7에 사용된 애플 A10 퓨전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시리즈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는 오늘날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모바일 AP로, 독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대다수 스냅드래곤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퀄컴 스냅드래곤은 보급형부터 프리미엄급까지 다양한 AP를 내놓고 있다. 미디어텍 역시 이에 못지않게 다양한 AP를 출시하고 있는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의 스마트폰이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가 그중에서도 중급기 이상이 주로 판매되기 때문에 국내 사용자들의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AP는 퀄컴 스냅드래곤과 삼성전자 엑시노스, 그리고 애플의 A 시리즈가 거의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유율 1위의 퀄컴 스냅드래곤

하지만 전 세계 AP 출하량을 보면 양상이 다소 다르다. 퀄컴은 전 세계 시장을 놓고 보았을 때에도 부동의 1위지만 미디어텍과 스프레드트럼도 상당히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당장 LG전자의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프리미엄급은 AP로 퀄컴 스냅드래곤을 사용하고 있지만, 중급기나 보급기에는 퀄컴 스냅드래곤과 함께 미디어텍의 AP을 다수 채택하고 있다. 또한 중저가형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시장에서는 미디어텍과 스프레드트럼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에서 내놓고 있는 독자 AP인 기린 시리즈와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계열 태블릿PC에서 많이 사용되는 인텔의 아톰 등이 있으며,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내놓고 한때 제법 인기를 끈 마 있는 OMAP AP는 경쟁에서 도태되며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GPU의 강자 엔비디아가 내놓는 테그라 AP도 있지만, 그래픽 부분에만 특화되어있는 탓에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텍의 AP

화웨이의 독자 AP인 하이실리콘 기린

독자 AP, 왜 만들까?

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은 상당히 높지만 자사의 독자 AP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수많은 갤럭시 시리즈에 모두 독자 AP인 엑시노스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대표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와 갤럭시노트 시리즈만 보아도 국내 출시 모델은 엑시노스 AP를 사용하지만,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 출시 버전에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사용하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이 골고루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엑시노스 AP의 전 세계 점유율은 예상보다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시노스의 성능은 스냅드래곤 최상급의 성능과 비슷하거나 상회하는 정도로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냅드래곤 대비 뛰어난 엑시노스의 성능 (출처 : Geekbench)

이렇게 독자 AP를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범용 AP 제조사의 출시 일정과 상관없이 경쟁력 높은 신모델 단말기를 내놓을 수 있으며, AP 제조사의 영향력도 받지 않게 된다. 화웨이 역시 독자 AP인 하이실리콘 기린 시리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신제품 출시 일정을 세울 수 있고,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반면, 독자 AP가 없는 경우 AP 공급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올해 상반기 가장 먼저 출시된 LG전자의 G6만 하더라도 시기적으로는 퀄컴의 최신 AP인 스냅드래곤 835를 탑재할 것이 유력시되었으나, 자체 제조 시설이 없는 팹리스 기업인 퀄컴이 스냅드래곤 835의 생산을 삼성에게 맡기면서 초기 생산량을 전량 삼성이 가져가기로 함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사용 가능한 가장 최신 AP인 스냅드래곤 821을 탑재하게 되었다. 스냅드래곤 821은 지난해 중순 출시된 모델로, 벌써 반년이 훨씬 넘어 일각에서는 구형 AP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스냅드래곤 821 AP를 채택한 LG G6

중국의 진격, 한국의 퇴보

이처럼 독자 모바일 AP가 없는 경우 겪을 수 있는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많은 제조사들이 독자 AP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샤오미도 오포와 비보 등 후발 주자들의 압박에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한 후 자체 개발 AP로 눈을 돌려 지난 2월 말 첫 독자 AP인 서지 S1을 탑재한 단말기인 미5C를 공개했다. 아직 시장에 많이 풀린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샤오미 독자 AP의 성능이나 문제점이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저력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화웨이에 이은 샤오미의 독자 AP 개발은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 내 반도체 설계의 육성 정책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샤오미의 첫 독자 AP Surge S1과 이를 채택한 미5C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경쟁력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는 업체도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곳밖에 없는 것으로 봐야겠지만, 이 중에서 독자 AP를 가지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LG전자는 지난 2014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AP인 뉴클런을 출시하고, 동년 10월 뉴클런을 탑재한 첫 스마트폰인 G3 스크린을 출시한 바 있다. 이후 이 기념비적인 LG의 첫 AP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후속 모델인 뉴클런2가 엑시노스7420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췄다는 정보가 나오면서 LG의 플래그십 단말기에 채택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뉴클런2의 출시는 차일피일 미뤄졌으며, 결국 두 번째 뉴클런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개발 인력이 다른 부서로 재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LG전자의 독자 AP 개발 계획은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 역시 중국과 같이 정부 주도의 육성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커넥티드카 등과 같은 시장이 더 커지기 전에 빠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원수연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