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극장가를 미국 히어로들의 VS 시리즈들이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배트맨VS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진영싸움을 그린 ‘캡틴아메리카3 시빌워’, 엑스맨들의 전쟁을 다룬 ‘엑스맨 아포칼립스’ 등 올해 히어로 영화의 화두는 단연 ‘대결’이다. 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립이 스마트폰 시장에도 존재한다. 몇 년 째 스마트폰 마니아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애플과 삼성전자 제품 애호가들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애플 마니아들, 이전부터 존재했던

먼저 이야기해 둘 것이 있다. 본 기사의 앱등이, 그리고 삼엽충이란 표현은 둘 다 일방의 마니아들을 벌레에 비유한 지극히 저속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비하의 단어지만, 양 진영의 대립을 감정대립을 보다 명확하게 그리기 위해 통용되고 있는 이런 표현을 가져다 사용하고 있는 점에 먼저 양해를 구한다.

애플은 데스크탑 시장이 열린 이래 항상 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해 왔다.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들, 감각적인 홍보 문구, ‘애플 제품을 쓴다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란 메시지를 끊임없이 소구한 마케팅 전략, 거기에 스티브 잡스의 획기적인 프레젠테이션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일부 마니아들은 애플의 제품에 대해 광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것이 다른 경쟁 제품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에 대한 사랑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담당하는 IT 마니아들을 현재는 ‘테크놀로지 에반제리스트’라 칭하는데, 학계에서 그 시초로 꼽는 이들이 바로 애플 마니아들이다. 애플이 테크놀로지 에반제리스트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애플은 매킨토시만 판매해 오던 때와는 격이 다른 가히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와 동시에 애플 마니아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내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로, 휴대폰의 성능제한에 불만이 쌓여있던 IT 마니아들에게 아이폰3GS를 내놓은 애플은 그야말로 ‘휴대폰 시장의 선도자’였으며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의 신’과 같았다.

▲마니아들에게 있어 애플 그 자체였던 스티브 잡스

애플의 횡포, 반감이 싹트다

애플이 절대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와중에, 서서히 이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iTunes를 기반으로 한 불편한 파일 관리 시스템, 리퍼비시를 전제한 고압적인 AS 정책, 거기에다 비싼 단말기 가격까지. 애플이 그때까지 취해왔던 정책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반감을 가질 요소를 많이 품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런 이들에게 아이폰이 압도적인 성능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다.

아이폰3GS 독점의 시대와 압도적인 점유율의 아이폰4 시대를 지나며 안드로이드 진영도 조금씩 발전을 이뤘다. OS 차원에서 안드로이드는 열심히 아이폰의 iOS를 벤치마킹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갔으며, 스마트폰 제조에 대한 노하우가 쌓으면서 안드로이드 디바이스 제조사들의 제품들도 한 달이 멀다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갤럭시S2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성능 면에 있어서도 아이폰 제품과 견줄 수 있는 제품들이 줄을 지어 출시되기 시작했다.

대안이 확보됨에 따라 애플 제품에 대한 반감이 서서히 표면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반면 애플 제품, 특히 아이폰의 애호가들 중 일부는 성장한 안드로이드 진영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비하까지 일삼았다. 시쳇말로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열렬한 애플 마니아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그 반대에 속해있는 이들에게 급격한 반감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애플 마니아들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는 광적인 애플과 아이폰 애호가들을 가리켜 ‘앱등이’라는, 곱등이에 빗댄 비하의 용어를 낳기에 이른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회심의 일격, 갤럭시S2

▲ 직접적으로 안드로이드OS와 삼성전자를 카피캣이라 비난한 스티브 잡스

아이폰의 대안, 삼성전자와 갤럭시의 부상

일본 센트럴리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란 야구단이 있다. 요미우리는 일본 프로야구 리그의 선도 구단으로, 전 세계 프로야구를 통틀어서도 유례가 없는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야구단이다. 일본의 경제성장과 부국, 일본 그 자체를 상징하는 요미우리는 하지만 많은 팬들만큼 또 그만큼의 안티팬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이 팀을 싫어하는 이들의 안티 요미우리의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미우리를 꺾은 팀은 연고지가 어디든 안티 자이언츠의 지지를 등에 업게 된다.

현재의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안티 요미우리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과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제조사며, 애플이 공식석상에서 직접적으로 불편함을 표하며 견제하기 시작한 최초의 안드로이드 진영 스마트폰 제조사가 바로 삼성전자다. 안티 애플의 상당수는 애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삼성전자를 추앙했으며, 자연스레 애플 마니아들과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삼성전자의 제품을 바라보는 애플 마니아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들은 삼성전자와 그들의 마니아를 스티브 잡스가 칭한 것처럼 철저하게 애플의 아이폰을 벤치마킹한 ‘카피캣’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그런 카피캣이 애플의 위상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데에 대한 불편함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보자면 재벌그룹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옴니아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애국심 마케팅에 대한 반감의 시각도 존재한다.

‘앱등이’들이 보기에는 안드로이드, 특히 삼성전자의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은 실체를 알면 당연히 싫어해야 할 재벌을 옹호하는 이들이며 애플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IT에 무지한 이들이다.

▲삼성전자 홍보방식에 대한 비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옴니아2의 애국심 마케팅

▲애플의 키노트 못지않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삼성전자의 신제품 공개 언팩 행사

‘삼엽충’과 ‘앱등이’, 끊임없이 싸우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애플과 삼성전자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사건을 겪게 된다. 애플의 고소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특허소송전이 바로 그것이다. 성장하는 삼성전자와 갤럭시를 끊임없이 견제하던 애플은 결국 2011년 4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지방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로 제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에 삼성전자가 동년 6월 30일, 애플이 5종의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애플과 삼성전자 두 회사가 본격적인 소송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 회사의 직접적인 충돌과 함께, 전략적으로 기업 차원에서 두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갈등조장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안드로이드 진영 1인자로 올라선 삼성전자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기업 차원에서의 분위기 조성, 아울러 대세에 따른 편승 소비를 조장하기 위한 밴드왜건 효과를 일으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분석이다. 최소한 두 회사의 갈등 심화로 인해 삼성전자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애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었으며, 애플은 마니아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를 소송전을 통해 다시 한 번 얻을 수 있었다.

애플 마니아들이 보는 삼성전자 마니아들은 계몽의 대상이다. 실체를 모르고 환호하는, 애플의 카피캣에 불과한 회사를 숭배하는 마니아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앱등이라고 조롱하는 괘씸한 이들이다. 경쟁상대로 생각되지 않던 비난의 대상이 어느덧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까. 이와 같은 비난의 시선은 앱등이에 대응되는 또 다른 비하의 단어, '삼엽충'을 만들어 내게 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라이벌 구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다

▲ 유례없는 소송전으로 번진 두 회사간의 법정싸움

둘 간의 감정싸움은 언제 끝이 날까

앱등이와 삼엽충의 감정적 대립은 절정을 이뤘던 2011년을 지나 어느덧 벌써 6년째를 맞고 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시대의 형국이 예전과는 달라진 양상을 띠게 됐다. 애플의 국내 점유율은 아이폰3GS, 아이폰4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삼성전자는 예전의 위용을 잃어버리고 플래그십 시장에서는 애플에,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제조사들에게 위협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다음의 전략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일부 주주들은 삼성전자가 아예 스마트폰 시장에서 손을 떼야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이 모든 걸 떠나, 스마트폰 디바이스 시장 자체가 이제는 성장일변도를 지나 위축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자연스레 앱등이와 삼엽충이라는 비하의 단어들의 쓰임새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두 마니아층 사이에는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심심치 않게 두 마니아층의 대립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직 이 ‘떡밥’은 쉬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진영 1인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는 한 이 감정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애플 마니아와 삼성전자 마니아들은 각자 자신들의 취향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어느 한 쪽의 생각이 완벽하게 옳다는 결론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완벽한 결론이 없었기에 두 마니아층의 싸움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옳지도, 또 그르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스마트폰 디바이스에 대한 취향으로, 또한 그 단말기의 제조사에 대한 호감도로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고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비하가 섞인 단어를 비난 대신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고 건전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 조성을 위해, 이제 ‘앱등이’와 ‘삼엽충’이란 단어를 스마트폰 성장의 시대적 과도기에 조용히 묻어둬야 할 때가 아닐까.

▲이제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라이벌로 애플보다 샤오미가 더 많이 거론되고 있다

최덕수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