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PC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즉 PC가 대중화에 성공한 이후 디지털 세상은 가정용 데스크탑 PC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데스크탑의 아성은 계속되고 있다. 랩탑이라고도 불리는 노트북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에도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데스크트탑이 주로 사용됐다. 랩탑의 휴대성은 큰 장점이긴 하지만, 가격대비 성능이나 사용의 편의성에서 데스크탑을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패드를 위시한 태블릿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향후 PC 시장의 중심이 태블릿PC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태블릿PC가 과연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태블릿PC, PC 시장을 위협하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얼마 전 발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태블릿PC 판매량이 1억 200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해 태블릿PC 판매량인 약 6000만 대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2010년 4월 애플에서 아이패드를 처음 출시한 이래 태블릿PC 시장은 불과 2년 만에 연간 1억 대의 시장으로 성장하는 셈이다.

기종별로 보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가 여전히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2011년 약 4000만 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해 전체 시장의 2/3 점유율을 확보한 바 있다. 작년의 경우 안드로이드 진영의 태블릿PC 제품들이 다수 쏟아졌고, 특히 아마존에서 출시한 킨들파이어가 높은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아이패드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마 전 뉴아이패드를 출시한 애플은 올해에도 약 7300만 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해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독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급격한 판매량 증가가 기존의 PC 시장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1년 2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8400만 대로 2010년 동기보다 약 200만 대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하며 태블릿PC의 열풍 속에서도 오히려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조금 다른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IDC가 발표한 2011년 2분기 북미지역 PC 출하량을 살펴보면 총 1785만 대로 전년 동기 1863만 대 보다 약 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북미지역은 전세계 태블릿PC 시장의 2/3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패드가 가장 많이 팔린 곳이다. 아이패드는 전 세계 판매량의 60% 이상을 북미에서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PC 시장이 2.6% 성장하는 동안 북미에서는 4.2%의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다. 세계에서 태블릿PC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지역에서의 PC 판매량 감소, 더욱이 세계 시장의 흐름과 역행하는 모습은 태블릿PC가 PC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태블릿PC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를 감안했을 때, PC 시장의 하락세가 눈에 띌 정도로 크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태블릿PC 시장의 성장세가 매섭긴 하지만, 아직까지 기존 PC 시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태블릿PC를 PC의 한 갈래로 봤을 때 전체 PC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태블릿PC가 데스크탑을 대신한다?
태블릿PC의 인기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 이전에 같은 iOS를 사용한 아이폰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아이폰 이전에도 스마트폰과 그 전신인 PDA폰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최신 휴대전화들이 시장에 출시됐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을 알린 것은 아이폰이었다. 애플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는 미려한 디자인, 스티브 잡스의 브랜드 마케팅, 애플이 보유하고 있던 방대한 콘텐츠 등 아이폰의 성공 요인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요인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iOS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 UI에 있었다. 아이폰 이전의 스마트폰과 PDA폰들이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사용 방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이패드의 성공 이유도 아이폰과 마찬가지다.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되고 미국에서 열풍이 불어 닥칠 때 언론을 장식했던 뉴스들을 상기해보자. 당시 아이패드 관련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사람들이라면 아이패드의 주 구매층이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라는 소식을 자주 접했을 것이다. 기존 PC 사용에 어려움을 느꼈던 고연령층 사용자들이 아이패드를 통해 비로소 최첨단 디지털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아이폰이 쉬운 사용법으로 대중화를 이끌면서 스마트폰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아이패드 역시 이후 태블릿PC들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아이패드 이후 태블릿PC들이 대중화되면서 그 동안 PC에서 했던 많은 작업들을 태블릿PC에서도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태블릿PC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태블릿PC의 커다란 화면이 주는 이점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인터넷만 해도 스마트폰에서는 모바일 전용 페이지에 접속해 답답하게 웹서핑을 했지만, 태블릿PC에서는 일반 PC와 동일한 환경에서 웹서핑을 할 수 있다. 또,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감상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큰 화면에서 즐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일반 PC와 비슷한 오피스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태블릿PC가 이처럼 다양한 기능들을 대신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제 데스크탑 PC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반 대중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편적인 기능만 놓고 보면 이 지장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사용하면서부터 집에 와도 PC를 켜지 않는다는 사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용자들도 회사에서는 여전히 데스크탑 PC에 의존하고 있다. 업무를 진행하는데 있어 태블릿PC는 아직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이나 그래픽 작업 등 고사양을 요하는 전문직종 뿐 아니라, 단순 사무 업무의 경우에도 아직은 태블릿PC로 작업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따른다. 이외에도 고사양 게임 플레이, 고용량 데이터 관리 등 태블릿PC가 태생적 한계에 부딪히는 작업들은 얼마든 지 있다.

태블릿PC가 사용하기 편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활용성 측면에서 아직은 일반 PC와 겨루기에 이른 감이 있다. 세계 시장에서 태블릿PC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기존 PC 시장이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이유도 두 제품의 쓰임새가 분명히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태블릿PC에게 필요한 것은 정체성
사실 태블릿PC는 상당히 어중간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스마트폰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고 큰 화면을 탑재해 콘텐츠 활용성은 더 높지만, 휴대성에서는 스마트폰보다 떨어진다. 무게는 일반 랩탑보다 가볍고 이동 중에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활용도에서는 뒤처진다. 일부 기업들에서는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에게 업무용 태블릿PC를 제공하고 있지만, 생산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랩탑이나 데스크탑을 추가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태블릿PC의 콘텐츠 생산 기능이 일반 PC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블릿PC의 진가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발휘된다
일례로 2011년 2분기 북미지역 PC 출하량을 다시 살펴보면, 시장 전체가 하락세에 놓인 가운데 애플만 독보적으로 14%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아이클라우드로 모든 애플 디바이스를 연동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윈도우 대신 맥을 구입한 사용자들도 적지 않게 있겠지만, 그 보다는 iOS용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기업 및 개인의 구매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하며 PC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정작 애플의 PC 판매량만 놓고 봐도 이 말이 얼마나 모순인지를 알 수 있다.

태블릿PC의 생산성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태블릿PC의 가장 큰 용도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거창하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큰 화면으로 영상을 감상하거나 최신 게임을 즐기기도 하며, 인터넷 웹서핑, 전자책 등 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콘텐츠의 소비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태블릿PC는 데스크탑이나 랩탑에 비해 부족한 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사용의 간편함, 휴대성 등에서 월등히 앞서는 측면도 있다. 단점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현시점에서는 기존의 PC와 태블릿PC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는 태블릿PC와 데스크탑, 랩탑 등의 형태적인 구분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미 태블릿PC와 랩탑을 접목한 PC제품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면서 벽을 허물고 있다. 휴대성과 사용편의성, 그리고 생산성까지 갖춘 형태의 PC들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아가면서 최근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스마트 오피스, 스마트 에듀케이션, 스마트 홈 등 미래 생활이 한층 가깝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월간 앱스토리 | 석주원

김준혁 기자 press@app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