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이 다시 움직인다. 지난 2014년 11월 베가 팝업노트를 출시한 후 19개월 만에 신제품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 사이 팬택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벤처 신화로 유명한 토종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한 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힘들게 신제품을 내놓게 되었다. 주인이 바뀐 새로운 팬택, 뉴 팬택이 우리 곁에 다시 온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팬택이 돌아온 자리는 예전보다 더 힘든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팬택이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가 남아있다. 왜 팬택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다시 한 번 짚어보는 팬택의 역사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를 아는가? 휴대폰 이전 시대에 개인 사용자들의 통신장비로 큰 인기를 얻었던 삐삐, 팬택은 이 삐삐의 제조와 판매를 기반으로 해서 1991년 3월 창업한 작은 회사였다. 이후 1997년 휴대전화를 개발, 생산해서 LG정보통신에 OEM 공급을 하면서 휴대전화 시장에 진입했으며, 같은 해 상장하면서 규모를 빠르게 키워가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걸면 걸리는 걸리버'라는 카피로 잘 알려진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팬택앤큐리텔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는 현대전자에서 현대큐리텔로, 이후에 팬택앤큐리텔을 거쳐 팬택에 인수된다

그 다음으로 2005년에는 SKY 브랜드로 고급형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사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던 SK텔레텍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SK텔레텍은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앞서 2000년 SK텔레콤이 신세기이동통신을 인수할 때 허가 조건으로 SK텔레텍의 내수 판매대수 제한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제한기간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관련기관과 업체들은 SK텔레콤과 SK텔레텍의 수직계열화로 시장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휘두를 수 있음을 우려해 내수판매 제한 해제는커녕 추가제재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었다. 이에 부담을 느낀 SK텔레콤은 SK텔레텍의 매각을 추진했으며 당시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3위로 2위 LG전자를 맹추격 중이던 팬택은 시장 4위의 SK텔레텍 인수로 당장 시장 점유율 2위를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간 보급형 단말기 제조사라는 인식을 단박에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 SK텔레텍의 인수를 강력히 추진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SK텔레텍을 인수한다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1위인 SK텔레콤과도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팬택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팬택은 또 하나의 단말기 제조사를 인수하게 된다.

SKY 브랜드로 유명했던 SK텔레텍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인수하기 이전부터 팬택은 휴대전화에 다양한 시도를 해왔으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을 운영하거나 삼성과 LG보다 앞서서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등 투자개발에 많은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SK텔레텍의 무리한 인수는 경영악화를 불러왔으며, 때마침 휴대전화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결국 팬택은 2006년 말 기업개선작업, 즉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워크아웃 신청 1년도 채 안되어 2007년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게 되며, 5년 만에 기업개선작업은 종료된다. 이때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세대가 바뀌는 시점이었는데, 팬택이 당시 내놓은 스마트폰 중 일부가 최적화 등의 문제로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2012년 3분기에 다시 적자로 전환되며 어렵게 올라선 국내 시장 점유율 2위 자리도 다시 LG에게 넘겨주게 된다. 이후에도 팬택의 경영 악화는 계속되었으며 이를 견디지 못하고 2014년 3월 2차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어렵게 재기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장 상황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이동통신 3사 영업정지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즉 단통법 시행 등으로 어려움을 더해 결국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파산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가까스로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에 매각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상암동에 자리잡은 팬택 사옥 전경

팬택의 아임백, 스카이로 돌아오다

이처럼 굴곡진 영욕의 세월을 버텨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팬택이 드디어 신모델을 출시한다. 팬택의 신모델에 대한 많은 루머와 추측이 있었지만 최근 국제 무선충전 표준화 단체인 WPC(Wireless Power Consortium)에 신모델 관련 정보가 등록되면서 정보는 구체화되었으며, 신제품의 모델명이 IM-100이라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드디어 팬택이 정식으로 제품 출시 일정을 공개하게 되었다.

WPC에 등록된 팬택 IM-100의 모습

팬택이 공개한 신제품 발표 행사의 초대장을 보면 모델명 IM-100을 이용해 I’m Back이라는 표시를 사용했으며, 그 뒤에는 예전 스카이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왔다. 즉, 신모델은 베가 브랜드가 아닌 스카이 브랜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팬택은 팬택앤큐리텔로 이름을 바꾼 현대큐리텔과 스카이텔레텍으로 사명을 바꾼 SK텔레텍을 모두 인수 합병한 후 팬택과 스카이 브랜드를 모두 사용한 바 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초창기에는 자사의 스마트폰에도 스카이 브랜드를 사용한 바 있다. 팬택이 안드로이드를 처음 얹어 출시한 모델인 시리우스도 스카이 시리우스였으며, 베가 브랜드를 처음 사용한 모델도 스카이 베가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스카이 브랜드는 점차 사라지고 베가 브랜드가 메인에 서게 되면서 스카이는 사용자들의 뇌리에서도 서서히 지워져갔다.

그렇다면 팬택은 왜 다시 스카이 브랜드를 들고 나왔을까? 아마도 추측하건대 스카이 베가레이서2 등이 시장에서 외면받고 스카이를 완전히 제거한 베가 R3부터 다시 조금씩 살아난 이유로 베가를 메인으로 세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스카이 브랜드를 사용하던 시절이 팬택에게는 가장 화려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에 그때의 영광을 되돌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다시 돌아오는 SKY

하지만 팬택이 스카이 브랜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에 대한 불만의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현재 팬택의 상황에서는 플래그십 제품군을 내놓을 여력이 없다. IM-100 역시 정확한 사양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유출된 디자인이나 대략의 사양을 보면 중저가형임이 분명하다. 스카이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용자들의 추억을 되새기는 감성 마케팅을 이용하면서 희귀성 높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상징하던 스카이 브랜드를 중저가형에 붙인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용자들도 있으며, 성능이나 기능으로 승부해야 할 상황에 추억팔이에 기대려 한다는 시선도 있다. 기대와 비난을 함께 받고 있는 팬택, 아직은 팬택이 국내 시장에 존재해야 한다.

선도적인 혁신, 자극제의 역할

팬택이 국내 시장에 여전히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팬택은 새로운 시도, 혁신적인 시도를 꾸준히 해온 기업이다. 시장 선도적인 위치는 아니었지만 기술 분야에서는 선도적인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카메라폰은 아니지만 최초로 33만 화소를 사용한 휴대폰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아직까지도 중급 이상의 일부 단말기에만 적용되고 있는 지문인식 기능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에 탑재한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최초의 지문인식 휴대폰 팬택 GI100

또한 LG가 한동안 G 시리즈에서 연속 채택한 바 있는 후면 버튼 역시 팬택이 베가 넘버6에서 먼저 채택했으며, 이 모델은 국내 최초 FHD 디스플레이 탑재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 가장 먼저 LTE 원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놨으며, 국내에서 가장 먼저 1300만 화소의 고해상도 카메라를 채택하고 가장 먼저 모션인식 기능을 넣은 바 있다. 스마트폰에 메탈 소재를 쓰지 않던 국내 시장에서 최초로, 그것도 세계 최초의 엔들리스 메탈링을 적용한 스마트폰을 내놓기도 했다.

후면 버튼을 채택한 베가 넘버6

국내 최초 메탈 스마트폰, 베가 아이언

이 많은 ‘최초’ 타이틀이 팬택의 과거이다. 물론 다른 단말기 제조사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최초’ 타이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작은 기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이 갖기 힘든 빠른 추진력과 과감한 시도 등을 단말기 제조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해온 팬택이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제조사들도 자극을 받을 수 있었으며 소비자들 역시 더 넓어진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지켜야 할 자산, 특허

팬택의 매각이 결정되어 관심 있는 기업들의 인수의향서를 받을 때 가장 우려되었던 것은 해외 업체로의 매각이었다. 실제로 매각 진행 당시 중국의 화웨이와 샤오미, 그리고 인도의 마이크로맥스 등이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팬택이 해외 업체에 매각될 경우 팬택이 가지고 있는 특허 또한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팬택의 인수에 관심을 보여온 인도의 마이크로맥스

팬택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국내외를 통틀어 5000건에 가까우며, 지적재산권은 약 2만 건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991년 창업한 후 25년간 쏟아부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로 쌓아 올린 노하우까지 합친다면 해외 업체에서 팬택을 인수했을 경우 오히려 국내 제조사를 겨냥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팬택이 어렵게 다시 일어선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다시 쓰러지게 된다면 국내에서는 팬택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찾기 힘들게 될 것이고, 기술력과 특허가 외국 기업에게 넘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샤오미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특허임을 감안한다면 그 중요성은 누구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샤오미와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특허는 가장 중요한 인수 요소가 되고 있다

건강한 경쟁, 둘보다는 셋

국내 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외산 단말기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떠난 후, 국내에서 소비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iOS를 사용하는 애플의 아이폰을 제외하면 안드로이드 단말기는 삼성과 LG, 그리고 팬택 3사뿐이었다. 하지만 팬택이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시작한 이후 제품 출시와 유통은 완전히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소비자 선택권은 두 제조사의 제품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두 제조사만 남아있던 상황에서도 경쟁은 치열하게 진행되어 새로운 모델과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선보였지만 세 개의 업체가 경쟁할 때와 비교한다면 분명 그 정도는 많이 줄어들게 된다. 특히 현재와 같이 2위 업체인 LG까지 점유율을 계속해서 뺏기고 있다면 머지않아 소비자 또한 1위 업체의 독점적인 권력에 순응하는 방법만 남게 된다.

단 두 곳의 단말기 제조사만 남는 경우에는 두 업체가 담합해 시장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도 쉬워진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그러한 담합 행위는 흔하게 발생해왔기 때문에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 업체가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 모두가 함께 담합하기는 두 업체였을 때에 비해 훨씬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강력한 1위 업체를 2위와 3위 업체가 힘을 합해 견제하는 경우도 생겨 더욱 건강한 시장 경쟁 상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역할을 이미 예전에 팬택이 해왔으며, 국내 시장에 다시 뛰어들어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게 된다면 앞으로도 경쟁의 촉매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단말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과 함께 특정 업체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한 가격 상승 등의 요소까지도 방지해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은 건강한 시장구조를 만든다

다시 기대되는 3사의 경쟁 시대, 그리고 팬택의 몫

팬택의 신제품 국내 출시는 상당히 바라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파산 직전에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정리해고 등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있어서 원래 신제품 국내 출시보다는 저가형 모델이 시장의 중심인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다시 매출을 늘려가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택은 국내 소비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모델의 국내 출시를 결정했다. 이 결정이 다시 단말기 제조 3사가 경쟁하던 수년 전의 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팬택 스스로가 해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의 제품을 소비자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가격에 내놓고 불편함이 없는 사후지원까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그간 크게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이 팬택 스스로와 소비자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신뢰 회복 역시 팬택의 숙제

원수연 기자 press@appstory.co.kr